HOME > 이름사랑 NameLove > 한국의 성씨 > 성씨의 인구별 순위
전체 35(23)개의 본관과 129,780가구, 415,182명. (2000년 통계청 자료)
총 23개의 본관과 368,717명[24위]. (1985년)

손씨는 문헌에 118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7본을 제외한 나머지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손씨중 일직(안동) 손씨를 제외한 모든 손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忖) 촌장인 구례마(俱醴馬)의 손자 손직이 32년(신라 유리왕9)에 손씨로 성을 하사 받아서 생겼으며 일직(안동) 손씨를 제외한 모든 손씨는 구례마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경주, 밀양, 우러성, 청주, 평해 손씨는 구례마의 후손인 손순(遜順, 자는 사구, 호는 문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손순은 모량리 사람으로 일찍이 아버지 손학산(孫鶴山)을 여의고 남의 집에서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린 아들이 늙으신 어머니 운오(運烏)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아들은 다시 낳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한번죽으면 다시 모실 수가 없는데 아이가 어머님의 음식을 빼앗아 먹어서 어머님이 굶주리니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님 배를 부르게 해드려야겠소"하며 아내와 의논을 해서 어린 아들을 취산(모량리 서북쪽에 있다.)으로 데리고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돌로된 종이 나왔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나무에 걸어 놓은 두들겨 보니 소리가 은은했다.
아내가 "이 종을 얻은것은 필경 이 아이의 복인 듯 싶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묻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며 아들과 돌로된 종을 가지고 돌아왔다.
종을 집의 대들보에 매달고 두드렸더니 소리가 대궐까지 들려서 흥덕왕이 "서쪽에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 멀리들리니 보통 종이 아니니 조사해 보라"고 하자 신하가 조사해 보고 왕에게 그사실을 아뢰었다.
왕이 그 효행에 감탄하여 집 한채를 내리고 해마다 쌀 50석을 하사 하여 효성을 숭상 했으며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월성군에 봉했다.
이에 손순이 원래의 집을 희사하여 절을 만들어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돌로된 종을 모셔 두었다. 그후 신라 진성여왕 때에 후백제의 침입으로 절과 종은 없어지고 절터만 전해지고 있다. - (삼국유사에 전함)

* 시조 손순의 묘는 경북 월성군 건천읍 모량리 효자동에 있고 향사는 음력 10월 1일에 한다.
 
 
본관지
밀양(密陽)은 경남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법흥왕때 추화군이 되었다가 757년 경덕왕 16) 밀성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조에 와서는 밀주로 하였고, 그후 여러차례의 변천을 거듭하다가 1895년 밀양군으로 개칭하였다.
 
시조 : 손순[孫順]
밀양손씨(密陽孫氏)는 서라벌 육부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원손으로
효자 보응의 주인공인 손순(孫順)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는 신라 모량리(월성군 건천읍) 출신으로 아버지 학산(鶴山)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면서 노모를 봉양했는데, 어린아들이 항상 노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이를 민망히 여겨 아내에게 말하기를 "아이는 다시 얻을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얻기 어려우니 아이를 땅에 묻어 버리고 어머님의 배를 부르게 해야 하겠소" 하고는 아이를 업고 취산기슭에 가서 땅을 파고 묻으려다가 석종(石鐘)을 얻었다. 그의 아내가 "이 종을 얻음은 이 아이의 복인듯 하니 묻어서는 안되겠습니다"하여,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석종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두드렸더니 신기하리만큼 은은한 종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이소리를 듣고 신하에게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 멀리 들리니
빨리 이를 알아보오" 하였다. 왕의 사자가 그의 집에 가서 알아보고 자세히 왕에게 아뢰었다. 이 일을 알게된 흥덕왕은 "옛날 한나라 곽거가 아들을 묻자 하늘이 금솥을 주었다더니, 이제 손순이 아들을 묻자 땅에서 석종이 솟아나왔으니 천세의 효와 후세의 효를 천지가 함께 살피신 것이다"하고는 집 한채를 내리고 해마다 메벼 50석을 주어 지극한 효도를 표창했다고하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그후 시조 순(順)의 손자 익감(翼減)이 나라에 공을세워 응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밀양으로 하게 되었으며, 중흥조 긍훈(兢訓)이 고려 태조와 함께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공을세워 광리군에 봉해져서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인물
고려 때 상서좌복야에 오른 [변]과 평장사 효려(孝麗)가 유명했으며 빈은 병부상서에 올라 변방에 침입한 여진족을 격퇴시켜 온성에 전승비가 세워졌고, 후에 정당문학, 상장군 등을 거쳐 밀성군에 봉해졌다.
조선조에 와서는 서륜이 집현전 박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단종복위를 꾀하는 격문을 돌리다가 죽음을 당했다.

현감 민(敏)의 아들 비장(比長)은 공조참의와 장례원 판결사를 거쳐 예문관 부제학에 이르렀고, 홍록(弘祿)은 임진왜란때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실록을 보존케 하여 역사의 공신으로 유명했다.
영제(英濟)는 선조때 도산서원 건립때 사재를 털어 조력했으며, 덕심(德沈)과 덕순(德淳)은 임진왜란때 영천의 창암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한말에 와서는 3.1운동에 참여했던 병희(秉熙)가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고 제3대 교주가 되어 구한말과 일제의 암흑기에서 망국의 민족혼을 혁신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성세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여 밀양손씨(密陽孫氏)는 남한에 총 58,367가구, 243,46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강원도 양구군 일산면 장평리
경남 진양군 일반성면 운천리
충남 당진군 고대면 대촌리, 진관리
경남 밀양시 교동
전남 보성군 노동면 일원
경남 거제군 연초면 연사리
전남 보성군 복내면 복내리
평남 양덕군 동양면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