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가매, 간난이, 언년이, 먹쇠, 점돌이, 먹보, 막둥이, ……

옛날 사람들의 이름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옛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옛날엔 이름을 지어 주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노인 이름들 중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이상한 것을 꽤 많이 볼 수가 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악마'라고 지은 '사토 시게하루'라는 사람이 출생 신고를 하러 관청에 갔다. 그런데, 관청에서는 이런 이름을 어떻게 올릴 수 있느냐며 받아 주지 않았다. 다른 이름을 지어 와야 등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 등록을 거부당한 그 아버지는 이 이름을 호적에 꼭 오르게 해 달라고 재판을 걸었다.

사람들은 이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토쿄 가정재판소에서는 그 아버지의 요구가 옳다며 그 이름을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소는 '악마라는 이름 등록은 작명권(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리)을 남용한 예이지만…… 법적인 수속이 끝날 때까지 일단 호적 기재를 판결한다'고 판결을 한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악한 마귀'라는 뜻의 '악마'라는 이름이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 판결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악명(나쁜 뜻을 가진 이름)에 대한 문제에 관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켜 놓았다. 아무 이름이나 호적에 올릴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우리의 전통 작명(이름짓기) 관습으로도 이와 같이 일부러 나쁜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는가 하는 것 등에 관한 관심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떠 어떠한 이름은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정해 놓은 규정은 없다. 다만, 이름으로 올릴 수 있는 한자를 2천 여 자로 제한한 것과 이름의 길이를 성씨까지 포함해서 여섯 글자로 제한한 대법원 규칙이 있을 뿐이다.

'악마'라는 이름은 그 부모가 아들을 정말로 악마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름을 갖게 함으로써 그 본인이 씩씩하고 용감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역설적으로 뜻을 만든 것일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예로부터 귀한 아이일수록 나쁜 뜻을 담아 불러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름은 아니고 별명 비슷하게 스스럼없이 불러 주는 호칭에 '돼지'나 '악동'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이 돼지야, 그만 좀 먹어라."
"이 악동 좀 봐. 어느 틈에 밥상 위로 올라갔어."

귀여워서 한다는 소리가 이처럼 '돼지'나 '악동'이다.

이러한 전통 관습은 작명에서도 이어졌다. '악명위복(惡名爲福)'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이름을 나쁘게 지을수록 복을 갖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임금의 가문에서까지 '개똥'이라는 이름이 나왔고, 양반 가문에선 '도야지(돼지)'라는 이름도 나왔다. 예컨대, 조선 고종 임금의 아명(아이 때 이름)이 '개똥'이고, 조선시대 유명한 정치가 황희 정승의 아명이 '도야지'이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높이는 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엔 문물 제도 전반을 중국식으로 확립하게 됨에 따라 성씨는 물론 이름까지 한자식으로 표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양반 세계에서의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일이고, 상민이나 노비들은 대부분 우리 고유의 말로 지어 왔다. 그런데, 그 이름으로 쓰인 고유의 말들을 보면 바람직한 뜻을 담지 않은 것이 상당히 많음을 보게 된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펴낸 직후, 김수온 선생이 어느 건물의 낙성기를 적은 일이 있는데, 그 곳의 <사리영응기>라는 부분을 보면 47 명의 사람 이름이 성씨와 함께 기록돼 있었다. 거기에는 이름들이 모두 한글로 나와 있는데, 지금 사람들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들이었다.

막동, 타내, 올마대, 오마디, 오마대, 오망디, 오미디, 쟈가둥, 마딘, 도티, 고소미, 매뇌, 가리대, 올미, 더믈, 샹재, 검불, 망오지, 똥구디, 수새, 쇳디, 랑관, 터대, 흰둥, 우루미, 어리딩, 돌히, 눅대, 아가지, 실구디, 검둥, 거매, 쟈근대, 북쇠, 은뫼, 망쇠, 모리쇠, 강쇠, 곰쇠, ……

우리식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것들이었다. 얼핏 보아도 천박스러운 뜻을 가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 같은 것도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도 꽤 많다. 그러나, 이들 이름들은 분명히 모두 우리말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란 뜻의 '검불'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가 하면, 끝에 나았다는 뜻의 '막동'이 있고, '늑대'라는 짐승의 이름을 딴 '눅대'도 있다. '망아지(말 새끼)'란 뜻의 '망오지(망아지)', '돼지'란 뜻의 '도티', '검은 사람'의 뜻인 '검둥'이나 '거매', '망할 놈'의 뜻의 '망쇠', '똥구덩이'란 뜻의 '똥구디' 같은 이름들도 눈길을 끈다.
'똥'이나 '쇠'자와 같은 천스럽게 들리는 말을 써 가면서까지 이와 같은 천한 이름을 쓴 것은 왜일까? 그들의 신분이 천하거나 자식이 아무렇게나 자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일까?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임으로써 복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은 한자로 적고 이름을 한글로 적었는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이름들을 한자로는 표기하기가 어렵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름을 문서에 한자로 기록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음의 예를 보자.
이 름
표기
그 뜻
돌쇠→ 돌쇠(乭釗) (돌같이 단단히 자라라고-)
막둥이→ 막동(莫童,幕童) (막내로 태어났다는 뜻)
간난이→ 간란(干蘭) (갓 낳았다는 뜻)
언년이→ 언년(彦年) (엇났다는 뜻에서. 딸이라 기대에 어긋나--)
쌍가매→ 쌍가매(雙可買) (머리에 가마가 둘 있는 사람)
아지→ 아지(兒之,阿旨) (새 아이'라는 뜻. 앚+이)
아기→ 악이(惡伊) ('아기'라는 뜻)
큰애기→ 대아지(大兒之) ('먼저 난 아이'라는 뜻)
부엌쇠→ 복쇠(福釗) (부엌에서 낳았다는 뜻)
도야지(돼지) 도야지(島也之) 돈지(豚之)
이러한 천명장수(賤名長壽)의 사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요즘에 와서는 이름은 우선 좋은 뜻을 담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람', '슬기' 같은 아름다운 이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름은 어디까지나 뜻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나간 것이다.
이름도 이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